<101> 팍스로비드 팩트체크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약업신문 | 기사입력 2022/02/23 [13:44]

<101> 팍스로비드 팩트체크

정재훈의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약이야기

약업신문 | 입력 : 2022/02/23 [13:44]

입력 2022-01-26 14:11 수정 최종수정 2022-02-03 13:26

 

화이자에서 내놓은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지난 1월 14일부터 국내에서도 쓸 수 있게 됐다. 좋은 일이다. 임상시험 결과 유증상자이면서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사람이 증상이 나타난 후 가능한 한 빨리 5일 이내에 복용하면 입원 또는 사망 위험을 88% 감소시켰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 약을 가지고도 허위 주장을 펼친다. 

 


지난 가을에는 팍스로비드가 이버멕틴을 재포장한 거라는 낭설이 돌았다. 올해 1월 2일에는 팍스로비드에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다는 음모론이 친트럼프 성향의 웹사이트 welovetrump.com에 떴다. 팍스로비드 알약을 부수거나 깨물어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 안에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어서 그렇다는 거다.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묶으면 거짓말이 된다. 음모론자들은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가 예전에 조현병 전자약 인터뷰한 내용과 이번에 나온 팍스로비드 알약을 연결시켜서 마치 둘이 동일한 약인 것처럼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팍스로비드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필름코팅이 되어 있다. 보통 필름코팅이 된 알약은 서방정, 장용정과 달리 부수어 먹어도 되는 걸로 알고들 있다. 하지만 필름코팅정이라고 다 쪼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필름코팅이 아니라 약 성분의 흡수를 돕기 위한 필름코팅도 있기 때문이다. 위장관에서 잘 녹아서 흡수가 용이하도록 만든 장치 중 하나인 코팅이 손상되면 약의 흡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코팅된 알약을 깨물거나 부수지 말고 그대로 삼키라는 거다. (또는 필름코팅된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 투여했을 때와 알약 그대로 복용했을 때 혈중 농도 차이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쪼개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음모론자가 가짜뉴스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제약회사는 조금 더 쉽고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 공백이 생기면 그 틈을 음모론자가 파고 든다.)    

음모론자들이 굳이 끌어다온 마이크로칩은 항바이러스제와는 관계없다. 조현병 환자들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보니 복약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는 디지털 알약을 개발한 거다. (아직 국내에는 없는 제형이다.) 둘은 전혀 관계없는 약이다. 하지만 관계없는 사실 두 가지를 마치 관계있는 것처럼 묶어 사기를 치는 게 전형적 음모론 수법이다. 이런 속임수에 속아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미국 트위터에 최소한 4천 명 이상이다. 음모론자는 부지런하다. 약의 전문가로서 약사는 약에 대한 이런 가짜뉴스가 나올 때마다 지치지 말고 팩트체크하여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팍스로비드가 국내 도입되었지만, 아직 실제 사용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팍스로비드에는 주의가 필요한 약물 상호작용이 있다. 항바이러스제가 체내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도와주는 약 성분 리토나비르(ritonavir) 때문이다. 팍스로비드는 니마트렐비르(nirmatrelvir) 150mg과 리토나비르(ritonavir) 100mg의 두 가지 알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바이러스제로 작용하는 것은 니마트렐비르이다. 리토나비르도 원래는 HIV-1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로 개발되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리토나비르의 역할은 니마트렐비르가 인체 내의 약물 대사효소 CYP 3A4에 의해 대사되는 것을 막아서 약효가 더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약물 상호작용이 생긴다. 

CYP 3A4에 의해 대사되는 약성분은 시판 의약품의 30-50%에 달한다. 그만큼 상호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팍스로비드는 5일 동안 짧게 복용하므로 그 닷새 동안 끊을 수 있는 약이라면 잠시 복용을 중단하는 조치로 상호작용을 피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정도는 약물이 대사효소(CYP 3A4)에 의해 어느 정도로 대사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먹는 치료제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쓸 일이 없으면 더 좋은 일이다. 여전히 최선책은 백신을 맞는 거다. 백신을 맞자. 부스터까지. 기왕이면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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