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전 적자는 ‘탈원전’ 때문일까?

이코리아 | 기사입력 2022/06/17 [21:47]

[팩트체크] 한전 적자는 ‘탈원전’ 때문일까?

이코리아 | 입력 : 2022/06/17 [21:47]
  •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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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07 16:57

 

▲ 사진=뉴시스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 이코리아


[이코리아]  한국전력이 올해 1분기 역대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주요 언론은 “탈원전 폭탄”, “탈원전 책임론”, “탈원전 독박”, “탈원전 폭주” 등의 제목을 단 기사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한전의 적자 확대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앞서 한전은 지난달 13일 올해 1분기 매출은 16조4641억원, 영업손실은 7조7869억이라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했지만,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1조9286억원(32.9%)이나 증가했다. 

한전 적자가 확대된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계속된 연료비 상승세다. 실제 1분기 발전공기업 연료비(7조6484억원)와 전력구입비(10조5827억원)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2.8%, 111.7% 상승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세계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국제 유가 및 석탄 가격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전이 연료비 상승에 더욱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비중이 축소되지 않았다면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원전을 통해 연료비 급등에 따른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 원전 이용률 및 가동률. 자료=한국수력원자력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이코리아


◇ 원전 이용률·가동률 떨어지면 한전 적자도 커질까?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원전 가동률(전체 시간 대비 가동시간)과 이용률(설비용량 대비 발전량)은 박근혜 정부 때보다 감소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2017~2021년) 원전 평균 이용률과 가동률은 각각 71.5%, 71.9%로 박근혜 정부(81.4%, 81.7%) 대비 약 10%포인트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한전의 연간 평균 영업이익(손실)은 박근혜 정부 7조6637억원에서 문재인 정부 3390억원으로 약 96%나 감소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 비교 대상에 포함하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이명박 정부 5년간(2008~2012년) 원전 평균 이용률과 가동률은 각각 89.9%, 89.2%로 박근혜 정부보다 7~8%포인트 높다. 하지만 이 기간 한전의 연간 평균 영업이익은 –1979억원으로 오히려 적자다. 

연도별로 보면 원전 이용률·가동률과 한전 적자의 상관관계를 단정 짓기가 더욱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 원전 이용률·가동률이 가장 높았던 2008년(93.4%, 93.6%) 한전은 2조798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정부로부터 약 67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금융위기로 인한 고유가 위기를 원전 비중을 높여 해결하려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원전 가동률이 가장 높았던 2021년(76%) 한전은 5조860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가장 낮았던 2018년(66.5%)에는 2080억원의 적자에 그쳤다. 당장 역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올해 1분기 원전 가동률은 82.5%로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최고 수준이다. 

▲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 추이. 자료=한국전력공사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 이코리아


◇ 문재인 정부는 과연 탈원전 정부인가?

무엇보다 이용률과 가동률이라는 지표만으로 문재인 정부를 ‘탈원전 정부’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한국전력공사의 전력통계월보에 나온 에너지원별 발전량 통계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0.6%포인트 늘어났다. 발전량 또한 같은 기간 14만8427GWh에서 15만8015GWh로 6.5% 증가했으며, 발전설비는 2만2529MW에서 2만3250MW로 증가했다. 

물론 원전 비중이 30%에 달했던 박근혜 정부 말기와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의 원전 비중은 낮은 편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원전 비중을 2017년 26.8%, 2018년 23.4%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는 2017년 한빛 4호기 격납건물에서 공극(구멍)이 발견된 후 전체 원전에 대한 안전성 점검이 진행되면서 원전 가동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보정조치가 단계적으로 마무리되면서 2019년부터 원전 가동률과 비중은 계속 높아졌다. 

특히 올해 1분기 원전 발전량은 4만3960GWh로 지난해 1분기(4만574GWh)보다 3386GWh(8.3%) 늘어났으며, 전력구입량 또한, 같은 기간 3만8651GWh에서 4만1826GWh로 3175GWh(8.2%) 증가했다. 원전 비중 또한 같은 기간 27.9%에서 28.8%로 0.9%포인트 높아졌다. 유가 상승에 대응해 원전 발전량을 확대했지만 적자 폭이 커지는 것은 막지 못한 셈이다. 

▲ 월별 전력판매 단가 및 전력도매 시장가격(SMP) 추이. 자료=기후솔루션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 이코리아


◇ 한전 적자, 근본 원인은 경직된 연료비 정책

그렇다면 한전이 연료비 급등에 대응하지 못한 채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연료비 상승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기 어려운 제도와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도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지난 3일 발간한 ‘한전 적자, 검은 주범’ 보고서에서 “현재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연료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변동비반영시장(Cost Based Pool)”이라며 “전력시장 도매가격이 국제 연료 가격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석탄 및 원유, LNG 등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해 1분기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도매 시장가격(SMP)은 킬로와트시(㎾h)당 약 181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7%나 증가했는데, 이로 인해 1분기 총 전력거래금액은 작년 동기 대비 75%(9.1조원) 증가해 21.3조원에 달했다. 

반면 연료비 상승분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한전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한전의 전력판매단가는 kWh당 110원 수준으로, 1kWh의 전기를 팔 때마다 71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해 놓고도 정부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연료비 변동을 분기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을 계속 유보해왔다. 지난해 4분기에는 2013년 이후 8년 만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원 인상했지만, 1분기에 국제 유가 하락을 이유로 3원 인하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동결한 셈이다. 

한전은 지난 3월에도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3원 인상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지난해 12월 발표된 기준연료비(kWh당 4.9원)와 기후환경요금(kWh당 2원) 인상분이 올해 2분기부터 적용되는 만큼,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가파른 물가상승세를 고려하면 새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기후솔루션은 “한전이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노출로 인해 발생한 비용 증분을 연료비 원가연동제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자 자기자본으로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발전원별 전력정산금 추이. 자료=기후솔루션출처 : 이코리아(http://www.ekoreanews.co.kr)  © 이코리아


◇ 높은 화석연료 의존도, 고유가에 취약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도로 인해 고유가 및 석탄 가격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전력시장 구조 또한 한전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석탄·LNG 발전량 비중은 63.5%로 10년 전과 똑같다. 석탄발전 비중은 40.8%에서 34.3%로 감소했지만, LNG 비중이 22.7%에서 29.2%로 늘어나면서 석탄발전 감소분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kWh당 석탄발전의 정산단가는 최대 약 155원, 액화천연가스(LNG) 정산단가는 약 247원까지 상승했다. 발전량을 고려해 총 전력정산 금액을 비교하면, 1분기 석탄발전 총 정산금은 전년 동기 대비 73%(약 2.9조원) 증가한 6.8조원, LNG 발전 총 정산금은 112%(5.2조원) 늘어난 약 9.9조원에 달한다. 전체 전력도매 비용 증가분이 9.1조원임을 고려하면, 석탄·LNG(8.1조원) 발전의 기여도는 약 90% 수준이다. 

화석연료로 인한 부담은 연료비 급등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실제 한전은 해외 화석연료 개발사업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규모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한전이 약 8000억원을 투자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바이롱 석탄광산 개발사업은 환경오염 문제 등을 이유로 지난 2019년 호주 당국으로부터 사업 승인을 거부당했다. 한전은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호주 연방대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결국 사업이 좌초됐다. 

한전이 인도네시아에 건설 중인 자바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수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KDI가 지난 2020년 발표한 1차 예비타당성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전의 해당 사업으로 보게 될 예상 손실규모는 약 883만 달러(약 106억원)에 달한다. 

기후솔루션은 “화석연료에 대한 한전의 높은 의존도로 인해 증가한 전력생산 비용과, 그 비용을 상각할 수 없는 현구조가 한전의 적자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한전 및 국내 전력시장이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한 국제 유가 변동 상황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화석연료의 탄소세, 환경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세계 추세를 감안한다면 상황은 만성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해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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