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전국 단위 실시했지만 지난 2016년 폐지
호주 NSW주, 캐나다 BC주 등 주 단위에서는 유효
미국, EU 등은 운행-휴게시간 강제로 안전 보장 노력
[이데일리 오연주 인턴 기자] 지난 7일 시작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화물연대와 화주들이 대립하고 있는 이번 파업의 도화선은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다.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도는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하여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20년 1월 1일 도입됐다. 다만 과도한 시장 개입이란 지적에 수출입 컨테이너 및 시멘트 품목에 한하여 2022년까지 3년 일몰제로 도입됐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도 일몰제 폐지를 주장하며 파업에 나선 가운데 재계에서는 안전운임제가 해외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준봉 무역협회 화주협의회 사무국장은 6월 7일 방영된 SBS 8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전운임제에 대해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시장의 기능이 작동을 할 수 없도록 짧은 기간에 물류비가 급등했다”고 주장했다.
안전운임제도가 해외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 호주, 연방차원에서 실시했다 폐지... 주 단위에서는 유사 제도 시행 중
우리나라의 안전운임제와 가장 유사한 제도는 지난 2016년 폐지된 호주연방의 ‘최저운임제도’다. 2012년 7월에 입법된 호주의 도로안전운임법(Road Safety Remuneration Act)은 특수고용 화물자동차운송운전자와 정규직 화물자동차운송노동자의 최저의 운임 및 보수와 노동조건에 대한 기준을 규정했다.
국가단위로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호주의 도로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자와 소유자 사이의 분쟁으로 입법 4년만에 폐지됐다.
하지만 주 단위의 법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드니가 속해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는 노사관계법(Industrial Relations Act) 제 6장에서 안전운임제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법안 316조는 대형 화물차 운송 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조건의 최소 표준을 지정하는 ‘계약 결정(contract determinations)’을 발행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 계약결정을 발행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사진=NSW주 노사관계법 캡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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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그리피스 대학교 데이비드 피츠 명예 교수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989년부터 2021년까지 뉴사우스웨일주와 호주의 나머지 지역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충돌사고에 대한 분석을 수행한 결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법은 주의 안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 뉴사우스웨일스주에 노사관계법 제6장이 도입된 1989년 이후 화물차 사고 비중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사진=데이비드 피츠 교수 제공)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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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한국이 호주 연방 차원의 도로안전운임법에는 큰 관심을 가지면서, 오히려 더 관련성이 높은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사례는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캐나다, 브라질 등 화물운송자에 최저운임 규정
캐나다도 주 단위의 최저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컨테이너트럭법(Container Trucking Act)을 통해 밴쿠버 항만의 컨테이너 운송에 대한 최저운임제를 규정하고 있다. 법안 제28장 2조 22항에 따르면 시의회 부지사는 컨테이너트럭 운전자가 지급받는 초기 최소 운임과 유류 할증료를 설정한다.
▲ 최저운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사진=BC주 컨테이너트럭법 캡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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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컨테이너트럭법에 따라 2014년 컬럼비아주 컨테이너운송감독청(Office of the British Columbia Container Trucking Commissioner, 이하 OBCCTC)이 설립되었다. OBCCTC는 컨테이너 운송 서비스 면허를 발급하고 법 준수 여부를 조사 및 감사하는 역할을 한다.
▲ 브라질의 화물운송 최저운인법 관련 내용 (사진=ANTT 홈페이지 캡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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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국가 단위의 화물 운송 최저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라질 국토교통부(ANTT)의 규정에 따라 운송 운영 비용을 반영한 최저 운임을 지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브라질의 화물운송 최저운임법은 2018년 7월 20일부터 시행되어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미국, EU 등은 안전 위해 운행시간 제한 및 휴게시간 보장
반면 미국과 EU는 최저운임을 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통안전 확보를 위해 화물차 운송의 일일 운행시간 제한 및 휴게시간 보장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미국은 1999년 운송업체 안전개선법(Motor Carrier Safety Improvement Act)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교통부(DOT) 내에 연방차량안전청(FMCSA)를 설치하고, 화물차 운전자가 하루에 운전할 수 있는 시간과 주당 총 근무 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 화물차 운전자의 최대 노동 시간을 정해두고 있는 미국의 사례 (사진=미 연방규정집 eFCR 캡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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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CSA가 규정하고 있는 미국 화물운송기사의 최대 운행시간은 하루 11시간으로, 이후 최소 10시간 이상 숙면 등 휴식을 취해야 한다. 고의적으로 규정 위반을 요구하는 운송업체에 대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법으로 운전자의 근무시간과 휴식 시간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있다. 규정 No 561/2006의 제2장 6조에 따르면 하루 운전 시간은 9시간을 넘을 수 없으며 주간 운전 시간은 56시간을 넘을 수 없다. 또한 4시간 30분의 운전 후에는 45분 이상의 휴식을 취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 운전자의 일별, 주별 노동시간을 규제하고있는 유럽연합의 사례 (사진=EC 법안 캡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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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안전운임제가 해외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송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있는 해외 사례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브라질 등이 있다. 하지만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국가 전체 차원의 법안이 아니며 주별 법안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미국와 유럽연합에는 최저임금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더 강력한 법안의 사례가 있다. 이들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을 법으로 철저히 규제해 교통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다. 위의 사례들을 근거로 “안전운임제는 해외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은 절반의 사실로 판정한다.